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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모든 사람이 일 년에 10㎝씩 크는 줄 알았어요(웃음).”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선화예중 3학년 때 키가 180㎝. 그 뒤로 1㎝를 더 컸다. 분야에 따라 우월한 피지컬은 ‘떡잎부터 달랐다’며 회자되기도 하지만, 발레는 그렇지 않았다. ‘큰 키’는 그 시절 무용수의 약점이 됐다. “발레리나를 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어머니는 모델을 권했다.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죠(웃음). 그런데 발레가 너무 좋았어요. 그땐 죽어도 발레를 하겠다고 했어요. 하는 데까지주식왕
해보고 싶었어요.”
큰 키만큼 길고 가느다란 팔이 아르보 패르트의 ‘알리나를 위하여’에 맞춰 허공을 향했다. 이상은의 손짓과 몸짓은 그것 자체로 음악이었다. 요한 잉거가 안무한 ‘워킹 매드’의 한 장면. 발레리나 이상은의 리허설 모습에 서울시발레단원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감정을 따라갔다.
영국국립발레단의 리드 수석으로전문가리딩
활동 중인 이상은(38)이 무려 15년 만에 한국의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선다. 국내 최초의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이 창단 때부터 보낸 러브콜을 수락하며 성사된 무대다.
최근 서울 노들섬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더 많은 컨템포러리를 배워보고 싶어 외국에 나가게 됐는데, 한국에 컨템포러리 발레단이 생겨 반가운 마음이알라딘게임다운
었다. 열정을 갖고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상은이 출연하는 작품은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잉거의 더블빌(두 작품을 한 무대에 올리는 것)인 ‘워킹 매드&블리스’ 중 ‘워킹 매드’다. 이상은과 잉거의 인연이 깊다.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퍼 발레단에 소속돼 있던 2013년 잉거의 이 작품을 처음 배웠고, 2016년에는 무대에 섰다. 비상장매매
이번 한국 공연에서도 같은 역할이다.
그는 “그동안 독일, 영국에서 요한 잉거의 작품을 꾸준히 해와 그의 동작과 안무 스타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며 “잉거는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중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다운된 느낌을 많이 표현한다”고 했다.
이상은은 선화예중·고를 졸업한 뒤 2005년 대학 진학 대신 프로 발레2011년주도주
단에 입단했다. 당시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발레리나로 꿈을 꾸게 했던 단체인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프로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 올해가 데뷔 20년이다.
발레리나로 성장하던 시기, 그의 ‘큰 키’는 제약이었다. 탄탄한 기본기와 풍부한 표현력을 갖췄지만, 그에게 맞는 배역과 파트너를 만나는 일이 쉽진 않았다. 그는 “유니버설 발레단에서도 제 파트너를 찾아주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돌아봤다.
‘큰 키’로 인한 제약은 유럽 발레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처음 본 외국 발레단 오디션은 떨어졌고, 오디션 초대장을 받지 못한 경우도 숱했다. “키가 너무 크다” “우리 발레단과 맞지 않는다” 등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다 2010년 드레스덴 젬퍼 오퍼 발레단에 코르드발레(군무)로 입단해 2016년 프린시펄(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그는 “주역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며 “키가 큰 편이라 파트너를 찾기 쉽지 않고 여러 제한이 있어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약점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키를 한계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이자 때론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했다. 그가 해외 발레단으로 향한 가장 큰 이유는 컨템포러리 발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유니버설 발레단 시절 1년에 한 번씩 했던 ‘모던 발레의 밤’ 당시 오하드 나하린, 윌리엄 포사이스의 작품을 배우며 영향을 받았다. 이상은은 “클래식 발레를 하며 조금은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컨템포러리를 하며 자유로움을 처음 느꼈다”고 했다.
드레스덴 젬퍼 오퍼에서 10여 년간 몸담았던 그는 2023년 영국국립발레단(ENB)의 리드 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레스덴 젬퍼 오퍼를 이끌던 애런 왓킨 예술감독이 ENB를 맡게 되며 이상은에게 이적을 제안했다.
이상은은 “왓킨 감독님은 획일화된 스타일보다는 각자의 객성을 존중한다”며 “무용수들이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길을 지속해서 지원해 준다”고 말했다. 그 점이 이상은과도 잘 맞았다. 그는 “체격 조건이 달라 같은 동작을 해도 다른 무용수들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고 배우며 나의 것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상은의 20년은 아시아 무용수의 성장이자 도약으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는 것이 너무 재밌다”고 말한다. 이상은은 “고전 발레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컨템포러리 발레에 빠져 들었지만, 컨템포러리를 배우고 경험하며 클래식 발레 안에서도 자유로움의 공간을 찾아가고 있다”며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를 오가는 게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오랜만에 서는 한국 무대를 준비하며 그는 “15년 전의 전 컨템포러리 발레를 배우고 싶어 외국에 나갔지만 이젠 한국에 있어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익힐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며 “요즘은 달라진 한국 무용의 변화를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이상은은 “그만둘 때가 자연스럽게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후회 없이 떠나고 싶어요. 무용수로의 활동 이후엔 어떤 걸 해야 할지는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현역 무용수로서 추고 싶은 춤도 많고, 하고 싶은 작품도 아직 많아요. 점점 더 배우는 게 재밌어져요.” 고승희 기자